삼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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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우

三友 | Samoo
국가 대한민국 (다국적 기업)
창립일 1938년 10월 20일
창업주 박승배
회장 박태영
본사 서울특별시 영등포구 여의대로
규모 대기업
사업분야 화학, 생활용품, 산업기계, 반도체, 금융, 유통, 미디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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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경성상회 시절

조선시대부터 종로는 육의전을 중심으로 길가에 시전행랑들이 늘어선 상업의 중심지였다. 그 한복판인 종각 맞은편에는 중국산 비단을 취급하던 선전이 있었는데, 한때는 육의전 중 최고라고 불렸던 선전은 임오군란 후 중국인 상인들이 서울에 들어와 직접 물건을 팔면서 직구족들에 밀려 망하게 되었다. 1916년 이 자리에 박승배 창업주가 '경성상회'를 차린 것이 그룹의 시초이다.

설립 당시에는 포목점으로 시작했으며, 조선 내에서 생산되는 포목 뿐 아니라 중국과 일본에서 생산되던 고가의 수입산 포목부터 양품 잡화까지 취급하게 된다. 박승배는 당시 일본인 상점에서 경험을 쌓은 한국인 점원을 고용하여 상점의 확장을 시도하였다. 당시 한국인 상점들은 제조 공장에서 직접 상품을 수입하지 못하고 서울의 일본 도매상에게 상품을 공급받아야 하는 어려움을 겪고 있었기 때문에 일본 상인들의 경쟁 상대가 되지 못하였다. 따라서 박승배는 경험이 많은 점원을 오사카에 보내 상주토록 하고 일본 공장 제품을 직수입하였다.

이렇게 박승배의 경성상회는 좋은 상품을 값싸게 판매한다는 소문이 시중에 퍼지면서 개업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주력인 포목 외에도 귀금속 등 여러 잡화를 취급하며 사실상 준 백화점에 가까운 모습을 보이게 된다. 1931년에는 경성상회를 주식회사화하고 종로에 6층 건물이 신축되자 이 건물을 전세로 얻어 경성백화점을 개점하게 된다.

제조업으로의 확장

경성백화점은 일본에서 화장품을 수입하면서 주요 단골들에게 제공했는데 이게 반응이 좋자 화장품 생산에까지 사업영역을 확대해 나갔다. 1934년, 박승배는 서소문에 한국 최초의 서양식 조제 약국인 삼우약품을 설립하고 화장품과 의약품을 생산하기 시작했다. 이때 일본 제약회사들과의 경쟁으로 일제로부터 세금 탄압을 받기도 했다.

1937년 박승배 창업주가 사망하고 장남인 박재철이 가업을 이어받게 된다. 박재철은 아버지의 화장품과 의약품 제조업을 이어 받으면서 플라스틱에 대한 이해만 높이면 칫솔, 빗 등의 일상 생활용품을 만들 수 있음을 깨닫고 본격적인 제조업으로의 진출을 위해 1939년 삼우화학을 세워 플라스틱과 생활용품 제조업에 진출하게 된다.

미군정 말기인 1947년, 박재철은 사세 확장을 위해 인천에서 가장 큰 건자재 가게였던 '대성상회'를 인수하여 삼우건설을 설립한다. 그리고 얼마 안가 한국전쟁이 터지면서 미군 관련 공사와 전후복구 사업에 힘입어 성장하게 된다.

1950년대 해외 원조 등으로 전후복구 사업이 진행되면서 50년대 후반에는 전기통신이 대부분 복구되면서 라디오의 수요는 늘어나고 있었지만 당시 국산 라디오는 전무한 상황이었다. 이에 당시 삼우화학이 가지고 있던 플라스틱 가공 경험과 금형 기술을 최대한 활용하여 1958년 삼우전자를 설립한다. 이듬해 국내 최초의 트랜지스터 라디오 생산을 시작으로 1960년 일본 산요전기와 제휴를 맺으면서 가전제품을 생산하기 시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