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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v><div style="width: 100%; padding: 2px 10px; border-radius: 5px; background: #141b28; color: #FFF; font-size: 14px;">'''삼우본관빌딩'''</div><div style="margin-top: -2px; margin-bottom: -4px;"> | </div><div style="width: 100%; padding: 2px 10px; border-radius: 5px; background: #141b28; color: #FFF; font-size: 14px;">'''삼우본관빌딩'''</div><div style="margin-top: -2px; margin-bottom: -4px;">{{글씨 크기|9|서울특별시 종로구 새문안로 76 (신문로1가)}}</div>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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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7월 22일 (월) 13:13 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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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우 三友 | SAMO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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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 | 대한민국 |
창립일 | 1908년 6월 28일 (116주년) |
창업주 | 신익상 |
회장 | 신동호 |
분야 | 석유화학, 중공업, 반도체, 유통, 미디어 |
기업 규모 | 대기업 |
소재지 | 삼우본관빌딩 서울특별시 종로구 새문안로 76 (신문로1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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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요
대한민국의 기업집단으로 지주회사 ㈜삼우가 주축이며 삼우화학과 삼우전자, 삼우중공업, 삼우산전, 삼우에너지를 주요 계열사로 두고 있다.
역사
종로의 터줏대감
조선시대부터 종로는 육의전을 중심으로 길가에 시전행랑들이 늘어선 상업의 중심지였다. 그 한복판인 종각 맞은편에는 중국산 비단을 취급하던 선전이 있었는데, 한때는 육의전 중 최고라고 불렸던 선전은 임오군란 후 중국인 상인들이 서울에 들어와 직접 물건을 팔면서 직구족들에 밀려 망하게 되었다. 1916년 이 자리에 박승배 창업주가 '경성상회'를 차린 것이 그룹의 시초이다.
설립 당시에는 포목점으로 시작했으며, 조선 내에서 생산되는 포목 뿐 아니라 중국과 일본에서 생산되던 고가의 수입산 포목부터 양품 잡화까지 취급하게 된다. 박승배는 당시 일본인 상점에서 경험을 쌓은 한국인 점원을 고용하여 상점의 확장을 시도하였다. 당시 한국인 상점들은 제조 공장에서 직접 상품을 수입하지 못하고 서울의 일본 도매상에게 상품을 공급받아야 하는 어려움을 겪고 있었기 때문에 일본 상인들의 경쟁 상대가 되지 못하였다. 따라서 박승배는 경험이 많은 점원을 오사카에 보내 상주토록 하고 일본 공장 제품을 직수입하였다.
이렇게 박승배의 경성상회는 좋은 상품을 값싸게 판매한다는 소문이 시중에 퍼지면서 개업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주력인 포목 외에도 귀금속 등 여러 잡화를 취급하며 사실상 준 백화점에 가까운 모습을 보이게 된다. 1931년에는 경성상회를 주식회사화하고 종로에 6층 건물이 신축되자 이 건물을 전세로 얻어 경성백화점을 개점하게 된다.
제조업으로의 사업 확장
경성백화점은 일본에서 화장품을 수입하면서 주요 단골들에게 제공했는데 이게 반응이 좋자 화장품 생산에까지 사업영역을 확대해 나갔다. 1934년 박승배는 서소문에 한국 최초의 서양식 조제 약국인 삼우약품을 설립하고 화장품과 의약품을 생산하기 시작했다. 이후 1940년에 박승배 창업주가 사망하자 장남인 박재철이 가업을 이어받았다. 이때 박재철은 플라스틱에 대한 이해만 높이면 칫솔, 빗 등의 생활용품을 만들 수 있음을 깨닫고 1942년 삼우화학을 세워 플라스틱과 생활용품 제조업에 진출하게 된다.
1947년 박재철은 사세 확장을 위해 당시 인천에서 가장 큰 건자재 가게였던 '대성상회'를 인수하여 삼우건설을 설립한다. 얼마 안가 한국전쟁이 터지면서 미군 관련 공사와 전후복구 사업에 힘입어 성장한다. 1954년에는 무역업체 삼우물산을 설립하고 부산에 공장을 설립하여 섬유와 의류 등의 공산품 수출을 시작했다.
순조롭게 사업을 확장시키던 와중에 전후복구 사업이 진행되면서 라디오의 수요가 급격히 늘어나자 이를 눈여겨본 박재철은 전자 산업에 진출하기로 결심한다. 박재철은 경성백화점의 라디오 수리점인 '경성정공'을 인수하고 1958년 삼우전자를 설립한다. 이후 삼우화학이 가지고 있던 플라스틱 가공 경험과 금형 기술을 최대한 활용하여 이듬해 국내 최초의 트랜지스터 라디오 생산을 시작으로 1961년부터는 미국 웨스팅하우스와 제휴를 맺으면서 가전제품을 생산하기 시작한다.
중공업 분야로의 진출
1967년 정부가 제2정유공장 설립을 계획함에 따라 삼우화학이 한국화약 등 여러 경쟁사들을 제치고 영국 로열 더치 쉘과 합작해 삼우정유를 설립한다. 1968년에는 정부의 중공업 육성계획에 따라 삼우중공업과 삼우산전을 설립한다. 이후 1960년대 베트남 전쟁에 따른 특수와 1970년대 경제성장 및 수출 호조에 따라 계열사들이 비약적인 발전을 이루기 시작했다.
이 당시 삼우물산은 국가 전체 수출액의 10%를 담당할 만큼 엄청난 성과를 이루었고 정부 주도의 중화학공업 육성정책에 힘입어 삼우화학, 삼우중공업, 삼우산전 등의 중화학공업 계열사들이 급성장하기 시작했다. 또한 삼우건설은 1970년대 중동 건설 붐과 강남 개발에 힘입어 국내 4대 건설사[1] 중 하나로 꼽히면서 삼우그룹은 단기간에 국내 최대 기업으로서 성장하게 된다.
1969년 기획조정실을 신설해 그룹의 형태를 갖추었고, 이후 한일증권을 인수해 금융업에도 진출하고, 1974년에는 동화신문을 인수해 언론사업에도 진출했으며, 극동관광개발을 인수하여 국내외 카지노 사업과 호텔사업에 진출하는 등 순조롭게 그룹을 확장시킨 결과 삼우그룹은 60~70년대에 재계순위 10위권에 진입하게 된다.
글로벌 신경영 선언
1972년 박재철 회장이 사망하자 삼남인 박성규가 경영권을 이어받는다. 취임 후 얼마 되지 않아 박성규 회장은 반도체 산업에 대한 대대적인 투자를 진행하겠다고 공표하였다. 뜬금없는 반도체 산업 진출에 내외부에서 수많은 우려가 제기되었으나, 당시 박성규 회장은 반도체가 '산업의 쌀'로 불리며 막대한 잠재력을 드러내는 것을 보면서 시장 진입의 필요성을 인식하고 있었다. 이에 1978년 일본 NEC와 합작으로 삼우반도체를 세우면서 반도체 산업에도 진출한다.
1980년대에는 품질은 사업의 처음이자 끝을 경영의 축으로 삼아 품질 향상에 집중하며 국내에서 탄탄한 입지와 내수시장 확보에 힘씀과 동시에 세계시장으로 진출하기 위해 발판을 마련해 나갔다. 1982년 기업에 필요한 인재를 양성하기 위해 경기도 용인에 종합연수원을 세우고, '글로벌 신경영' 선언에 따라 해외 자원개발 참여, 해외 건설 등 해외 수주를 적극적으로 받아들였다. 1980년대 후반부터는 해외로 눈을 돌려 동유럽, 동남아, 남미 등 신흥시장 개척을 추진해왔다.
1984년에는 일본 산토리와 합작법인으로 한국산토리를 설립하고 이후 삼우푸드서비스를 설립하면서 식음료 사업에도 진출한다. 1994년에는 방송 사업에 진출하면서 지상파 방송사 TVT를 설립한다. 1998년 외환위기 이후 '21세기형 경영체제 전환'이라는 로드맵을 발표하고 삼우건설과 삼우물산의 흡수합병, 지주회사 전환을 공식화 했으며 2002년 3월 지주회사 체제로의 전환을 완료했다. 현재는 순환출자 없이 지주회사인 ㈜삼우 아래로 수직적인 계열사 구조를 가지고 있다.
계열사
- 삼우물산
- 삼우화학
- 삼우중공업
- 삼우생활건강
- 삼우에너지
- 삼우엔솔
- 삼우산전
- 삼우전기
- 삼우전선
- 삼우전자
- 삼우CNS
- 삼우카드
- 삼우증권
- 삼우화재
- 삼우생명
- 삼우자산운용
- 삼우쇼핑
- 삼우호텔
- 삼우GRS
- 삼우GLS
- 쿠차
- TVT
- ↑ 현대건설, 대림산업, 동아건설, 삼우건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