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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남 [[김태연]]<br>차남 김태영<br>장녀 김한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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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성유통 물류부장 <small>(1968~1970)</small><br>한민그룹 사장<small>(1970~1979)</small><br>한민그룹 회장 <small>(1979~2014)</smal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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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7월 24일 (목) 08:00 판

KM그룹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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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
김선우
(1954 ~ 1977)
회장 직무 대행
김정한
(1977 ~ 1979)
제2대
김정우
(1979 ~ 2014)
제3대
김태연
(2014 ~ )

KM그룹 2대 회장
김정우
金正宇 | Kim Jeong-woo
출생 1943년 5월 17일
경기도 수원군
(現 경기도 수원시)
사망 2014년 12월 9일 (향년 71세)
서울특별시 종로구 평창동 천추각
국적 대한민국_국기.svg 대한민국
본관 김해 김씨
학력 매산국민학교 (졸업)
수원중학교 (졸업)
경기고등학교 (졸업)
와세다대학 상학부 (상학 / 학사)
부모 아버지 김선우, 어머니 이해린
형제자매 3남 2녀 중 삼남
배우자 김보라
자녀 장남 김태연
차남 김태영
장녀 김한서
경력 한성유통 물류부장 (1968~1970)
한민그룹 사장(1970~1979)
한민그룹 회장 (1979~2014)

개요

KM그룹의 2대 회장. 현재의 KM그룹의 기틀을 잡은 인물로 평가된다.

생애

1943년 김선우 회장이 제방상회 사원으로 재직 중에 셋째로 태어났다.

유년~청년기 시절

형제의 난

김선우 회장의 사망 이후, 1977년 1월 19일 한민그룹 긴급 이사회가 개최된다, 당시 유언으로 남긴건 없었지만 김선우 회장은 조항락 비서실장에게 "너가 경영을 잘할거 같은 놈으로 물려줘라, 그래도 정한이가 더 나은 것 같다"라는 말을 남겼다.

긴급 이사회의 만장일치로 김정한 부회장이 그룹 회장 대행을 맡게된다. 하지만 김정한 부회장은 유흥을 좋아했고 그룹 경영에는 별 관심이 없었다, 또한 돈을 만지는 것만 관심이 있었지 현장 상황은 아무것도 몰랐다. 반면 김정우 사장은 현장을 돌아다니며 실무에서 직원들의 신망을 얻고 있었고, 그룹 경영의 야망이 있었다.

1977년 김정한은 회장 대행에 취임하자마자 무작정으로 회사 예산을 모두 감축하고 긴축 경영 체제에 들어간다, 당시 한국은 박정희 정부로 인해 고도의 성장기 시기였고 특히 건설사에 투자가 절실한 상황이었다. 특히 김정한은 한민건설 사장을 불러 무작정 삭감을 지시했고 결국 다음 수주를 따내는데 실패하게 된다, 이때 김정우 사장은 바로 형에게 달려가 화를 내며 당장 원상복구하라고 말을 했지만 말을 듣지 않았다. 30여년 뒤 당시 한민건설 사장에 증언에 의하면 김정한은 건설사 예산을 삭감하여 그 돈으로 정치계 로비와 본인의 비자금을 마련할려고 했다고 말했다.

1977년 10월, 김정한은 외국계 투자은행장에 유혹에 넘어가 그룹의 막대한 규모의 자본을 단기 고수익 외화 회사채에 투자하게된다, 당시 그룹 경영실에서 극구만류했지만 김정한은 겨영실장을 해임하면서까지 이 프로젝트를 추진하게 된다. 하지만 당시 투자를 했던 회사가 파산하게 되면서 결국 김정한은 회삿돈 당시 100만달러 규모(현재 가치로 약 600만달러)를 잃게 된다, 그룹은 언론에 로비를 하며 이 사건을 외부로 퍼지는 것을 막으려했지만 결국 언론에 보도가 되었고 결국 회사에 큰 타격을 입게 된다. 이후 김정한은 이 사안에 대해 "시장 리스크였지 내 책임이 아니다"라고 말하며 책임을 회피했고 김정한 리더십이 흔들리게 된다.

1978년에 김정한은 회사를 장악하기 위해 아버지 김선우 회장과 처음부터 일해오던 계열사 사장 및 임원 7명을 강제 전보 조치 및 해임 조치를 하고 그 자리에 본인의 사람을 앉히게 된다. 결국 이 사건으로 인해 당시 물류부문 임원이었던 주현인[1]이 김정한이 계열사 간 자금 순환을 이용하여 회사채 투자 사건의 손실을 매꾸고 본인의 비자금을 마련할려고 했다고 언론에 폭로했다.

1979년에는 정계 로비를 통해 한민관광호텔 청량 인근 부지를 값싸게 매입하고 그 자리에 로비를 통해 공공사업 부지로 선정하고 한민건설이 수주하기로 했지만 이 사건이 언론에 보도된다. 결국 1979년 7월 3일, 이사회 안건으로 김정한 회장의 부회장직 및 회장 대행 해임건이 올라왔고 찬성 11표, 반대 2표로 결국 해임되고 며칠 뒤 김정우 사장이 그룹 회장직에 선임되는 안건이 올라오자 만장일치로 회장으로 추대 되었다.

3년간 이어진 형제 간 권력 투쟁은 결국 막내 김정우의 승리로 막을 내리게 된다. 이후 형인 김정한은 미국 LA로 출국하여 결국 사망 전까지 한국에 들어오지 못하게 된다.

  1. 김선우의 오른팔이라고도 불렸던 인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