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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역사 == | == 역사 == | ||
=== 100년 역사의 시작 === | |||
예진그룹의 창업주인 [[이승주]]는 원래 종로 육의전에서 조상 대대로 견직물 시전상을 경영해온 거상으로 일본의 전격적인 화폐개혁의 고비를 힙겹게 넘어서며 1907년 전통적인 시전 상인의 모습을 탈피한 기업 형태의 '이승주상점'을 열었다. 이어 1916년에는 대동무역주식회사를 설립해 무역업에 뛰어들었다. | |||
대동무역을 통해 청나라에서 각종 견직물을 수입해 들어오게 되면서 전성기를 이루는듯 했으나, 1920년에 이르러 조선총독부에 의해 중화민국에서 견직물을 수입해 들여오지 못하도록 금지하는 조치를 내리게 되면서 경영난에 빠지게 된다. [[이승주]]는 이를 타개하고자 1924년에 '대동직물'을 설립해 직접 견직물 생산에 들어갔다. 당시 청량리 공장에 설치된 직조기 대수는 모두 300대로, '''당시 국내 최대 규모였던 일본 미쓰이 물산의 조선방직 부산공장의 인견 견직기 대수 319대의 수준과 거의 맞먹는 대규모 공장'''이었다. | |||
태평양전쟁 중에도 만주로 포목을 '''밀수출'''했고, 일본의 마루베니나 이토추와 같은 대기업들도 이승주의 대동직물을 거쳐야 비로소 만주로 직물을 수출할 수가 있을 정도였다. 그러나 1945년 밀수출이 그만 일본군 감찰대에 적발당하면서 밀수 품목 전량이 법원에 압류당하는 위기를 맞게 되었고 재판을 받던 도중에 8.15 광복을 맞이했다. 압류당한 밀수품들 역시 미 군정 법무관의 해제 명령을 받아 반환받았다. | |||
8.15 해방 이후에는 대동운수를 설립하고 트럭 3대를 사들여 운수업에 진출했으며,이듬해에는 이승주상점을 '예진상회'로 바꾸었다. 이후 무역업에도 뛰어들어 1950년 홍콩에 게살 통조림을 수출했다. 그러나 6월 한국전쟁이 발발하고 12월 창업주인 [[이승주]]가 별세하는 등 난리를 겪으며 부산으로 피난했다. 이후 이승주의 장남인 [[이용태]]가 사장이 되어 가업을 이끌게 되었다. | |||
=== 사세 확장 === | |||
1951년 3월 정부는 귀속재산 불하계획을 발표한다. 이때 예진상회는 18대의 트럭을 확보해 불하 경쟁에 참전했다. 그리고 1952년 5월 '''서울운수를 불하받는데 성공'''하여 비로소 오늘날 예진그룹의 창업기를 개창하였다. 서울운수는 대동운수와 합병하여 예진통운(現 [[예진로지스틱스]])으로 개칭하였으며, 주한미8군과 군수물자 수송 계약을 체결하고, 베트남 전쟁 때인 1965년 [[이용태]]가 초대 한국용역군납조합 이사장으로 취임하여 1966년에 파병되는 미군과 군수물자 수송 계약을 체결하였다. 이처럼 1960년대까지는 무역업과 운송업이 주력 사업이었고, 미군과의 협력 관계를 바탕으로 성장했다. | |||
이후 사업 다각화에 나서 1960년 7월에 동국토건(現 [[예진 건설부문]])을 세워 건설업에 진출하고, 11월에는 태평양신문을 인수하여 [[한양일보]]를 창간해 언론 사업에도 발을 들였다. 1963년 9월에는 서울생명보험(現 [[예진생명]])과 한국손해보험(現 [[예진손해보험]])을 인수해 금융업에 진출했다. 1968년에는 학교법인 [[제일학원]]을 인수해 육영 사업까지 확장했다. 1973년 정부의 중화학 공업 육성 정책에 부응해 예진조선공업(現 [[예진조선해양]])을 설립하고, 전남 목포에 조선소를 건립하면서 조선업에도 진출했다. | |||
항공 사업에 관심을 보여 민항사 설립을 지속적으로 시도하였으나, 대한항공을 소유한 한진그룹의 반발에 가로막혀 실패했다. 때문에 [[이용태]]는 민항사를 설립하는 대신 항공기 생산 사업으로 눈을 돌리게 된다. 당시 우리나라는 항공기는 커녕 자동차조차 제대로 만들지 못하고 있었고, 막대한 투자비용과 불확실한 수익성으로 인해 그룹 안팎에서 항공산업 진출에 대한 반대가 만만치 않았다. 그러나 이용태는 항공기 제조 사업을 단기적인 이익을 얻기위한 수단보다는 국가적인 과업으로 여기고, 항공산업 진출을 밀어붙였다. | |||
그 결과 1975년 미쓰비시 중공업과 기술 제휴를 맺고 예진항공산업(現 [[예진에어로스페이스]])을 설립해 미사일 추진기관을 시제 생산했다. 1976년에는 국내 최초로 500MD 헬리콥터 생산에 성공했으며, 1982년 국내 최초의 제트 전투기인 KF-5 전투기(제공호) 1호기를 출고했다. 이후 예진항공산업은 KD2R-5 무인기 동체와 B747-400 항공기 날개 부품, MD-11 Composite Spoiler, UH-60 중형헬기 1호기, B777 날개구조물 등의 개발 및 생산 작업에 잇따라 참여하며 한국을 대표하는 방위산업체로 자리잡게 된다. | |||
이밖에도 IBM과의 기술 제휴를 통해 1979년 예진컴퓨터<ref>그러나 국내외 경쟁 업체들의 물량공세를 이기지 못해 2002년을 끝으로 개인용 컴퓨터 사업을 접었고, 예진컴퓨터는 예진데이타시스템과 합병해 [[예진TNS]]가 되었다. 현재 예진TNS는 ATM 기기와 디지털 데스크, 키오스크 등을 생산하며 금융 IT기기 제조를 주력으로 삼고 있다.</ref>를 설립해 컴퓨터 사업에 진출했고, ATM기기 국산화에 성공했다. 1986년에는 예진정보통신(現 [[예진ITX]])과 예진데이타시스템(現 [[예진TNS]])을 설립하여 정보통신 사업군도 구축했다. | |||
=== 항공업 진출과 전성기 === | |||
1988년 서울올림픽 개최를 앞두고 제2민항사 사업자로 선정되어 '''그룹의 숙원 사업이었던 민항사 설립에 성공'''했다. 이에 1988년 12월 [[예진항공]]을 설립해 보잉 737-400으로 서울(김포) - 부산, 광주 간 국내선 취항을 개시했다. 때마침 건설 경기도 호황을 맞으면서 예진그룹은 그야말로 '''전성기'''를 이루게 된다. | |||
1991년 8월 [[이용태]] 회장이 사망하자 이듬해에 장남 [[이철호]]가 회장으로 취임했다. 이후 '제2창업'을 선언하며 기존 사업을 통폐합하는 등 내실을 다지고, [[예진항공]]을 단기간에 세계 중위권 항공사로 성장, 미디어와 리조트 등 신사업을 개척하며 예진그룹이 '''재계 순위 10위권'''에 진입하는 결실을 맺었다. | |||
1997년 외환 위기를 맞아 그룹에 위기가 도래했다. [[예진항공]]은 외환위기로 인한 손님 급감에다가 당시 환율이 800원대에서 무려 2000원까지 치솟았는데, 이로 인한 환차손으로 제대로 타격을 입었다. 그룹의 주력 계열사인 건설 또한 건설 경기 침체로 어려움을 겪게 되었다. 다만 원래부터 현금보유와 부동산을 중시했었고 상대적으로 빠르게 구조조정을 진행했다. 사업부문 매각보다는 계열사를 줄이며 인원감축에 집중했고, 빠른 구조조정을 거듭 단행해 2000년에 예진도시바전기의 지분을 매각했다. 이때 편의점 체인인 한국세이코마트와 예진중공업(現 [[예진조선해양]])의 중장비사업부문과 기계사업부문, 예진상사(現 [[예진 글로벌부문]])의 섬유사업부문을 매각하고 인천의 리조트 부지와 대전 연구소 부지, 수원 공장부지를 빠르게 팔며 구조조정에 성공했다. 1999년에는 예진건설과 예진상사, 예진정보통신, 예진산업개발, 한국종합에너지 등 5개사를 합병해 [[예진(지주회사)|(주)예진]]을 창립하고, 그룹 지배구조를 개편했다. IMF 구조 조정의 성공으로 1999년 내외경제신문과 한국기업평가가 주관하는 신기업 경영(CCC; Clean Corporation Club) 멤버로도 선정됐다. 과감한 구조 조정과 자구 노력으로 1,000억 원 가까이 흑자를 낸 것 등을 높이 평가받은 결과였다. | |||
한편으론 21세기 신성장 사업으로 항공과 우주를 지목하고, 항공우주 및 방산 분야 역량 강화에 주력했다. [[이철호]] 회장 취임 직후인 1993년 경남 사천에 예진항공산업(現 [[예진에어로스페이스]]) 공장을 세워 록히드 마틴 F-16을 국내에서 라이센스 생산하였다. 1995년 6월에는 프랑스 파리 에어쇼에 참석해 세계 2위 엔진 생산 업체인 영국 롤스로이스 plc의 경영진들을 직접 만나고, 합작 법인인 [[예진롤스로이스코리아]]를 설립해 항공기 엔진 생산 사업을 시작했다. 이후 예진항공산업은 쌍발 복합재료 항공기 개발사업과 무궁화 1호 위성 사업 등에 참여하며 기술 고도화에 주력했다. [[예진항공]] 역시 1998년 창립 이래 처음으로 대한민국 대통령 전용기로 선정되고, 2006년 스카이트랙스로부터 5성급 항공사 인증을 받는 등 고급 항공사 이미지를 구축하며 성장을 거듭했다. 또한 2008년에는 [[에어앤스카이]]를 설립해 저비용 항공사 사업에도 진출했다. | |||
1995년 예진프로덕션을 설립해 영화 제작 및 배급 사업과 음반 사업에 뛰어들었으며, 보도전문채널 채널24와 영화전문채널 예진시네마네트워크(現 [[JBS DRAMA]])를 개국했다. 1996년에는 타임워너와 라이센스 계약을 맺고 예진매거진을 설립해 출판 사업에도 진출했다. 2006년에는 예진프로덕션과 예진매거진을 합병해 [[예진미디어스퀘어]]를 설립하고, 각 계열사들이 나눠갖고 있었던 한양일보, 채널24의 지분과 자사주를 인수해 미디어부문의 수직계열화를 이뤄냈다. 2011년 12월 1일에는 종합편성채널 [[JBS]]가 개국했다. 이렇듯 과감한 미디어 사업 확대는 [[이철호]] 회장의 강력한 의지에서 비롯됐다. 이 회장은 엄청난 영화광으로, 해외 출장 중에도 영화제 참석을 빼놓지 않았으며 평소 임원들에게 '''"기업이 문화의 힘을 갖지 못하면 살아남기 어렵다"'''고 강조했다. 또한 미디어 사업을 통해 그룹의 브랜드 가치를 끌어올릴 수 있다는 판단 아래, 미디어를 단순한 투자처가 아닌 그룹의 핵심 자산으로 여겼다. | |||
2000년에는 프로야구에 참여해달라는 박지원 당시 문화관광부 장관의 제안을 받은 뒤 고심했고 2000년 2월 프로야구단 창단 의사를 밝혔다. 그해 3월 충청북도를 연고로 하는 신생팀 [[예진블리츠]]가 창단되었다. | |||
=== 잇따른 위기와 부활 === | |||
2016년 최순실 게이트로 인해 [[이철호]] 회장과 최고 경영진들이 국회 청문회에 불려나가는 수모를 겪었고, 2019년 이후부터는 이철호 회장이 건강 문제를 사유로 대외 활동을 중단했다. 더군다나 조선업 불황과 탈원전 정책, 코로나19 등으로 인해 [[예진조선해양]]과 [[예진 건설부문]], [[예진엔지니어링]], [[예진항공]] 등 주요 계열사들이 잇따라 타격을 입으면서 위기설이 빠르게 번지기 시작했다. 더군다나 꾸준한 매출과 영업이익으로 캐시카우 역할을 하던 유통, 레저부문 계열사들 역시 쿠팡 등 이커머스 업체의 공세로 인한 시장점유율 하락과 코로나19 확산으로 인해 제대로 타격을 입었다. 그러나 2020년을 기점으로 조선업이 다시 되살아났고, 탈원전 정책 역시 폐기 수순을 밟으면서 점차 과거 실적을 회복하기 시작했다.<ref>최근에는 '''조'''선, '''방'''산, '''원'''전 테마주 열풍을 타고 주가 역시 고공행진을 이어가고 있다. 예진그룹은 조선([[예진조선해양]])은 물론 방산([[예진에어로스페이스]]), 원전([[예진 건설부문]]) 관련 기업을 '''모두 보유'''하고 있다. 2010년대 중후반의 위기를 생각하면 천지개벽 수준으로 이들 계열사들의 위상이 달라진 것이다.</ref> 또한 그룹 차원에서 원자력, 수소, 해상풍력 등 친환경 에너지와 항공우주, 연료전지를 새로운 핵심 성장축으로 삼고 신사업 확대에 나서며 사업 포트폴리오를 다각화하는 중이다. 예진항공 역시 코로나19로 인해 해외여행 수요가 급감하자, 여객기를 화물기로 전환하는 발빠른 대응으로 오히려 '''창사 이래 최대 영업이익'''을 달성하는 성과를 거뒀다. 현재는 해외여행 수요가 다시 증가하며 매출과 영업이익 증가세가 유지되고 있다. | |||
[[이철호]] 회장의 대외 활동 중단 이후 그룹 경영은 이 회장의 장남인 [[이재환]] 부회장이 대행하다가 2023년 '''이재환 부회장이 회장으로 공식 취임'''하였다.<ref>[[이철호]] 회장은 명예회장으로 물러났다.</ref> 이로써 예진그룹의 4세 경영 시대가 본격적으로 도래했다. | |||
== 브랜드 아이덴티티 == | == 브랜드 아이덴티티 == | ||
=== 사명 === | === 사명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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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I === | === CI === | ||
{| class="wikitable" style="width: 100%; text-align: center; border: 2px solid #26247B; font-size: 15px;" | {| class="wikitable" style="width: 100%; text-align: center; border: 2px solid #26247B; font-size: 15px;" | ||
| <div style="margin-left: auto; margin-right: auto; margin-top: 10px; margin-bottom: 10px; width: | | <div style="margin-left: auto; margin-right: auto; margin-top: 10px; margin-bottom: 10px; width: 80%;">[[파일:예진 심볼.webp]]</div> | ||
| <div style="margin-left: auto; margin-right: auto; width: | | <div style="margin-left: auto; margin-right: auto; width: 30%;">[[파일:YEJIN wiki.png]]</div>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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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tyle="background: #26247B; color: #FFF;" | <div style="margin-top: 2px; margin-bottom: 2px; line-height: 150%;">'''1978년 ~ 1995년''' | | style="background: #26247B; color: #FFF;" | <div style="margin-top: 2px; margin-bottom: 2px; line-height: 150%;">'''1978년 ~ 1995년''' | ||
| 22번째 줄: | 60번째 줄: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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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
=== 사가 === | === 사가 === | ||
{| class="wikitable" style="width: 100%; text-align: center; border: 2px solid #26247B;" | |||
! colspan="2" style="background: #26247B; color: #FFF;" | {{글씨 크기|12|사가(社歌) - '예진찬가' (1975년 제정)}} | |||
|- | |||
! style="width: 10%; background: #edf1ff; color: #26247B;" | 1절 | |||
| 겨레를 하나의 마음에 묶어<br>뜨겁게 타오르는 우리의 정성<br>인류의 고동 가슴에 품고<br>오대양 육대주를 가로지른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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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tyle="background: #edf1ff; color: #26247B;" | 2절 | |||
| 참되고 슬기롭게 오늘을 살며<br>미래꿈 펼처가는 우리의 기상<br>내일의 번영 다지고 다져<br>인류의 미래상을 창조해간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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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tyle="background: #edf1ff; color: #26247B;" | 후렴 | |||
| 아아 푸르깃발 우리의 예진<br>무궁한 내일의 보람을 안고<br>나가자 약진하자<br>우리는 예진가족 | |||
|- | |||
! colspan="2" style="background: #26247B; color: #FFF;" | {{글씨 크기|10|작사 박두진 / 작곡 정일남}} | |||
|} | |||
=== 슬로건 === | === 슬로건 === | ||
* 전 세계에 펼치는 푸른 날개 (1988~1989) | |||
* 세계속의 예진, 세계인의 예진 (1990~1994) | |||
* 세계인의 꿈, 예진 (1995~1997) | |||
* 정직한 친구, 예진 (1998~2003) | |||
* 내일의 꿈을 응원합니다 (2004~2006, 2008~2015) | |||
* 내일의 꿈을 창조하는 100년 기업 (2007) | |||
* Dream Tomorrow, 내일의 꿈 (2016~2018) | |||
* 내일을 바꾸는 힘 (2019~) | |||
== 경영이념과 기업정신 == | == 경영이념과 기업정신 == | ||
== 오너일가 == | == 오너일가 == | ||
== 경영진 == | == 경영진 == | ||
=== 회장급 === | === 회장급 === | ||
* '''[[이재환]] ([[예진(지주회사)|(주)예진]] 대표이사, [[예진항공]] 대표이사, [[예진에어로스페이스]] 대표이사)''' | |||
=== 부회장급 === | |||
* 박재원 ([[예진(지주회사)|(주)예진]] 전략부문 대표이사) | |||
* 이동욱 ([[예진조선해양]] 대표이사) | |||
* 박승주 ([[예진항공]] 대표이사) | |||
* 김현성 ([[예진생명]] 대표이사) | |||
* 황민성 ([[예진리테일]] 대표이사) | |||
* [[이혜영]] ([[예진미디어스퀘어]] 대표이사 겸 [[예진복지재단]] 이사장 겸 [[예진미술관]] 운영위원장) | |||
=== 사장급 === | |||
* 양승모 ([[예진(지주회사)|(주)예진]] [[예진 건설부문|건설부문]] 대표이사) | |||
* 박진우 ([[예진(지주회사)|(주)예진]] 경영진단실장) | |||
* 김우겸 ([[예진(지주회사)|(주)예진]] 커뮤니케이션실장) | |||
* 이한무 ([[예진엔지니어링]] 대표이사) | |||
* 박우진 ([[예진엔진]] 대표이사) | |||
* 김현일 ([[예진퓨얼셀]] 대표이사) | |||
=== 역대 임원 === | |||
* 명예회장 | |||
** [[이철호]] (2023~) | |||
* 회장 | |||
{{틀:예진그룹 회장}} | {{틀:예진그룹 회장}} | ||
* 수석부회장 | |||
** [[이재환]] (2020~2023) | |||
* 부회장 | |||
* 경영관리실장 | |||
* 종합기획실장 | |||
* 경영기획실장 | |||
* 비서실장 | |||
* 구조조정위원장 | |||
* 구조조정본부장 | |||
== 그룹사 == | == 그룹사 == | ||
예진그룹은 크게 '''에너지·중공업, 항공·우주, 금융, 유통·물류·서비스, 미디어''' 등 5개의 사업 영역으로 분류한다. 에너지·중공업의 주요 회사로는 [[예진조선해양]]과 [[예진엔지니어링]], [[예진엔진]], [[예진퓨얼셀]]을 꼽을 수 있고, 항공·우주는 [[예진항공]]과 [[예진에어로스페이스]]를 주축으로 한다. 금융 분야예는 [[예진생명]]과 [[예진손해보험]], [[예진카드]], [[예진자산운용]], [[예진투자증권]], [[예진저축은행]] 등 알짜 회사들을 거느리고 있다. 유통·물류·서비스에는 [[예진리테일]](유통, 식음료)과 [[예진로지스틱스]](물류), [[르네상스호텔앤리조트]](호텔) 등이 자회사를 종속회사로 두고 있다. 이외에도 [[예진P&D]](부동산), [[예진TNS]](사무용 장비 제조), [[예진ITX]](IT서비스), [[예진렌탈]](임대업), [[예진리서치]](연구개발), [[넥스티드]](광고대행) 등 다양한 업종의 계열사를 거느리고 있다. 미디어에서는 신문과 방송, 출판, 공연, 음악 등 산업의 전 분야를 아우르는 사업 포트폴리오를 구축했다. | 예진그룹은 크게 '''에너지·중공업, 항공·우주, 금융, 유통·물류·서비스, 미디어''' 등 5개의 사업 영역으로 분류한다. 에너지·중공업의 주요 회사로는 [[예진조선해양]]과 [[예진엔지니어링]], [[예진엔진]], [[예진퓨얼셀]]을 꼽을 수 있고, 항공·우주는 [[예진항공]]과 [[예진에어로스페이스]]를 주축으로 한다. 금융 분야예는 [[예진생명]]과 [[예진손해보험]], [[예진카드]], [[예진자산운용]], [[예진투자증권]], [[예진저축은행]] 등 알짜 회사들을 거느리고 있다. 유통·물류·서비스에는 [[예진리테일]](유통, 식음료)과 [[예진로지스틱스]](물류), [[르네상스호텔앤리조트]](호텔) 등이 자회사를 종속회사로 두고 있다. 이외에도 [[예진P&D]](부동산), [[예진TNS]](사무용 장비 제조), [[예진ITX]](IT서비스), [[예진렌탈]](임대업), [[예진리서치]](연구개발), [[넥스티드]](광고대행) 등 다양한 업종의 계열사를 거느리고 있다. 미디어에서는 신문과 방송, 출판, 공연, 음악 등 산업의 전 분야를 아우르는 사업 포트폴리오를 구축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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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진에어포트''': 항공사의 탑승 수속, 출입국, 수하물 처리 등을 담당하는 조업사. 항공사마다 조업사는 필수적으로 존재한다. | ** '''예진에어포트''': 항공사의 탑승 수속, 출입국, 수하물 처리 등을 담당하는 조업사. 항공사마다 조업사는 필수적으로 존재한다. | ||
** '''[[에어앤스카이]]''': 2006년 설립한 저비용항공사(LCC) | ** '''[[에어앤스카이]]''': 2006년 설립한 저비용항공사(LCC) | ||
** ''' | ** '''예진스카이티켓''': 1991년 예진항공의 자회사로 설립되었으며, 항공예약 및 발권시스템과 호텔, 렌터카 예약 등 여행사의 전자업무를 처리하는 프로그램 (CRS)을 운영하는 회사이다. | ||
* '''[[예진에어로스페이스]]''': 우주발사체, 위성서비스 등 우주항공 사업과 항공기계 부품 생산, 무인기 개발 및 생산, 군용기 MRO, 항공기 구조물 개발 등 항공우주 및 방산 사업을 담당하는 회사. 1975년 설립되었다. | * '''[[예진에어로스페이스]]''': 우주발사체, 위성서비스 등 우주항공 사업과 항공기계 부품 생산, 무인기 개발 및 생산, 군용기 MRO, 항공기 구조물 개발 등 항공우주 및 방산 사업을 담당하는 회사. 1975년 설립되었다. | ||
** '''예진롤스로이스코리아''': 영국 롤스로이스 plc와 합작으로 설립한 항공기 엔진 제조회사. 합작 지분비율은 6:4로 예진에어로스페이스쪽이 더 많다. | |||
** '''[[예진에어로시스템]]''': 인공위성 탑재체, 위성영상 분석 소프트웨어 사업을 담당하는 회사. | ** '''[[예진에어로시스템]]''': 인공위성 탑재체, 위성영상 분석 소프트웨어 사업을 담당하는 회사.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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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진리서치]]''': 구 예진경영연구원. 경영컨설팅 사업 등의 영리 사업을 한다. | * '''[[예진리서치]]''': 구 예진경영연구원. 경영컨설팅 사업 등의 영리 사업을 한다. | ||
* '''[[넥스티드]]''': 1994년 설립한 종합 광고대행사. 광고기획, 크리에이티브, 브랜드컨설팅, 미디어, 프로모션, 인터넷 마케팅 등의 사업을 영위한다. | * '''[[넥스티드]]''': 1994년 프랑스 퍼블리시스와 합작으로 설립한 종합 광고대행사. 광고기획, 크리에이티브, 브랜드컨설팅, 미디어, 프로모션, 인터넷 마케팅 등의 사업을 영위한다. | ||
=== 미디어 === | === 미디어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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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옥 === | === 사옥 === | ||
=== 참모조직 === | === 참모조직 === | ||
그룹 참모조직의 뿌리는 셋으로 나뉜다. 1966년 비서실이 먼저 신설되어 1973년 경영관리실, 1974년 기획조사실이 차례로 생겼고, 1980넌에 기획조사실이 '종합기획실'로 변경되었다. 1990년 세 조직이 합쳐져 '경영기획실'이 됐다가 1994년에 '비서실'로 변경했으나, 1998년에 비서실을 폐지하고 '구조조정위원회'를 신설했다. 이후 2000년 '구조조정본부'를 거쳐 2006년 조직개편에 따라 '경영기획실'로 변경했다가 2017년 폐지됐다. 현재는 별도의 참모조직을 두지 않고, [[예진(지주회사)|(주)예진]] 전략부문이 계열사 관리와 사업 전략 기획, 대외 홍보 업무 등을 총괄하고 있다. | |||
[[분류:FBN의 기업]] | [[분류:FBN의 기업]]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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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10월 11일 (토) 15:36 기준 최신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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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진그룹 禮進그룹 | Yejin Grou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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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업명 | 국문: 예진그룹 | |
| 영어: Yejin Group | ||
| 한자: 禮進그룹 | ||
| 국가 | ||
| 창립일 | 1907년 8월 1일 (118주년) | |
| 창업주 | 이승주 | |
| 회장 | 이재환 | |
| 규모 | 대기업 | |
| 유형 | 복합기업, 기업집단, 다국적 기업 | |
| 매출액 | 78조 6,509억 2,500만 원 (2024년 기준) | |
| 영업이익 | 4조 1,929억 원 (2024년 기준) | |
| 공정자산총액 | 142조 8,291억 7,900만 원 (2024년 기준) | |
| 시가총액 | 119조 7,937억 원 (2024년 기준) | |
| 소재지 |
예진 센트럴타워 서울특별시 강남구 테헤란로 2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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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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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요
내일을 바꾸는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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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진(禮進, Yejin)은 대한민국의 기업집단이다.
역사
100년 역사의 시작
예진그룹의 창업주인 이승주는 원래 종로 육의전에서 조상 대대로 견직물 시전상을 경영해온 거상으로 일본의 전격적인 화폐개혁의 고비를 힙겹게 넘어서며 1907년 전통적인 시전 상인의 모습을 탈피한 기업 형태의 '이승주상점'을 열었다. 이어 1916년에는 대동무역주식회사를 설립해 무역업에 뛰어들었다.
대동무역을 통해 청나라에서 각종 견직물을 수입해 들어오게 되면서 전성기를 이루는듯 했으나, 1920년에 이르러 조선총독부에 의해 중화민국에서 견직물을 수입해 들여오지 못하도록 금지하는 조치를 내리게 되면서 경영난에 빠지게 된다. 이승주는 이를 타개하고자 1924년에 '대동직물'을 설립해 직접 견직물 생산에 들어갔다. 당시 청량리 공장에 설치된 직조기 대수는 모두 300대로, 당시 국내 최대 규모였던 일본 미쓰이 물산의 조선방직 부산공장의 인견 견직기 대수 319대의 수준과 거의 맞먹는 대규모 공장이었다.
태평양전쟁 중에도 만주로 포목을 밀수출했고, 일본의 마루베니나 이토추와 같은 대기업들도 이승주의 대동직물을 거쳐야 비로소 만주로 직물을 수출할 수가 있을 정도였다. 그러나 1945년 밀수출이 그만 일본군 감찰대에 적발당하면서 밀수 품목 전량이 법원에 압류당하는 위기를 맞게 되었고 재판을 받던 도중에 8.15 광복을 맞이했다. 압류당한 밀수품들 역시 미 군정 법무관의 해제 명령을 받아 반환받았다.
8.15 해방 이후에는 대동운수를 설립하고 트럭 3대를 사들여 운수업에 진출했으며,이듬해에는 이승주상점을 '예진상회'로 바꾸었다. 이후 무역업에도 뛰어들어 1950년 홍콩에 게살 통조림을 수출했다. 그러나 6월 한국전쟁이 발발하고 12월 창업주인 이승주가 별세하는 등 난리를 겪으며 부산으로 피난했다. 이후 이승주의 장남인 이용태가 사장이 되어 가업을 이끌게 되었다.
사세 확장
1951년 3월 정부는 귀속재산 불하계획을 발표한다. 이때 예진상회는 18대의 트럭을 확보해 불하 경쟁에 참전했다. 그리고 1952년 5월 서울운수를 불하받는데 성공하여 비로소 오늘날 예진그룹의 창업기를 개창하였다. 서울운수는 대동운수와 합병하여 예진통운(現 예진로지스틱스)으로 개칭하였으며, 주한미8군과 군수물자 수송 계약을 체결하고, 베트남 전쟁 때인 1965년 이용태가 초대 한국용역군납조합 이사장으로 취임하여 1966년에 파병되는 미군과 군수물자 수송 계약을 체결하였다. 이처럼 1960년대까지는 무역업과 운송업이 주력 사업이었고, 미군과의 협력 관계를 바탕으로 성장했다.
이후 사업 다각화에 나서 1960년 7월에 동국토건(現 예진 건설부문)을 세워 건설업에 진출하고, 11월에는 태평양신문을 인수하여 한양일보를 창간해 언론 사업에도 발을 들였다. 1963년 9월에는 서울생명보험(現 예진생명)과 한국손해보험(現 예진손해보험)을 인수해 금융업에 진출했다. 1968년에는 학교법인 제일학원을 인수해 육영 사업까지 확장했다. 1973년 정부의 중화학 공업 육성 정책에 부응해 예진조선공업(現 예진조선해양)을 설립하고, 전남 목포에 조선소를 건립하면서 조선업에도 진출했다.
항공 사업에 관심을 보여 민항사 설립을 지속적으로 시도하였으나, 대한항공을 소유한 한진그룹의 반발에 가로막혀 실패했다. 때문에 이용태는 민항사를 설립하는 대신 항공기 생산 사업으로 눈을 돌리게 된다. 당시 우리나라는 항공기는 커녕 자동차조차 제대로 만들지 못하고 있었고, 막대한 투자비용과 불확실한 수익성으로 인해 그룹 안팎에서 항공산업 진출에 대한 반대가 만만치 않았다. 그러나 이용태는 항공기 제조 사업을 단기적인 이익을 얻기위한 수단보다는 국가적인 과업으로 여기고, 항공산업 진출을 밀어붙였다.
그 결과 1975년 미쓰비시 중공업과 기술 제휴를 맺고 예진항공산업(現 예진에어로스페이스)을 설립해 미사일 추진기관을 시제 생산했다. 1976년에는 국내 최초로 500MD 헬리콥터 생산에 성공했으며, 1982년 국내 최초의 제트 전투기인 KF-5 전투기(제공호) 1호기를 출고했다. 이후 예진항공산업은 KD2R-5 무인기 동체와 B747-400 항공기 날개 부품, MD-11 Composite Spoiler, UH-60 중형헬기 1호기, B777 날개구조물 등의 개발 및 생산 작업에 잇따라 참여하며 한국을 대표하는 방위산업체로 자리잡게 된다.
이밖에도 IBM과의 기술 제휴를 통해 1979년 예진컴퓨터[1]를 설립해 컴퓨터 사업에 진출했고, ATM기기 국산화에 성공했다. 1986년에는 예진정보통신(現 예진ITX)과 예진데이타시스템(現 예진TNS)을 설립하여 정보통신 사업군도 구축했다.
항공업 진출과 전성기
1988년 서울올림픽 개최를 앞두고 제2민항사 사업자로 선정되어 그룹의 숙원 사업이었던 민항사 설립에 성공했다. 이에 1988년 12월 예진항공을 설립해 보잉 737-400으로 서울(김포) - 부산, 광주 간 국내선 취항을 개시했다. 때마침 건설 경기도 호황을 맞으면서 예진그룹은 그야말로 전성기를 이루게 된다.
1991년 8월 이용태 회장이 사망하자 이듬해에 장남 이철호가 회장으로 취임했다. 이후 '제2창업'을 선언하며 기존 사업을 통폐합하는 등 내실을 다지고, 예진항공을 단기간에 세계 중위권 항공사로 성장, 미디어와 리조트 등 신사업을 개척하며 예진그룹이 재계 순위 10위권에 진입하는 결실을 맺었다.
1997년 외환 위기를 맞아 그룹에 위기가 도래했다. 예진항공은 외환위기로 인한 손님 급감에다가 당시 환율이 800원대에서 무려 2000원까지 치솟았는데, 이로 인한 환차손으로 제대로 타격을 입었다. 그룹의 주력 계열사인 건설 또한 건설 경기 침체로 어려움을 겪게 되었다. 다만 원래부터 현금보유와 부동산을 중시했었고 상대적으로 빠르게 구조조정을 진행했다. 사업부문 매각보다는 계열사를 줄이며 인원감축에 집중했고, 빠른 구조조정을 거듭 단행해 2000년에 예진도시바전기의 지분을 매각했다. 이때 편의점 체인인 한국세이코마트와 예진중공업(現 예진조선해양)의 중장비사업부문과 기계사업부문, 예진상사(現 예진 글로벌부문)의 섬유사업부문을 매각하고 인천의 리조트 부지와 대전 연구소 부지, 수원 공장부지를 빠르게 팔며 구조조정에 성공했다. 1999년에는 예진건설과 예진상사, 예진정보통신, 예진산업개발, 한국종합에너지 등 5개사를 합병해 (주)예진을 창립하고, 그룹 지배구조를 개편했다. IMF 구조 조정의 성공으로 1999년 내외경제신문과 한국기업평가가 주관하는 신기업 경영(CCC; Clean Corporation Club) 멤버로도 선정됐다. 과감한 구조 조정과 자구 노력으로 1,000억 원 가까이 흑자를 낸 것 등을 높이 평가받은 결과였다.
한편으론 21세기 신성장 사업으로 항공과 우주를 지목하고, 항공우주 및 방산 분야 역량 강화에 주력했다. 이철호 회장 취임 직후인 1993년 경남 사천에 예진항공산업(現 예진에어로스페이스) 공장을 세워 록히드 마틴 F-16을 국내에서 라이센스 생산하였다. 1995년 6월에는 프랑스 파리 에어쇼에 참석해 세계 2위 엔진 생산 업체인 영국 롤스로이스 plc의 경영진들을 직접 만나고, 합작 법인인 예진롤스로이스코리아를 설립해 항공기 엔진 생산 사업을 시작했다. 이후 예진항공산업은 쌍발 복합재료 항공기 개발사업과 무궁화 1호 위성 사업 등에 참여하며 기술 고도화에 주력했다. 예진항공 역시 1998년 창립 이래 처음으로 대한민국 대통령 전용기로 선정되고, 2006년 스카이트랙스로부터 5성급 항공사 인증을 받는 등 고급 항공사 이미지를 구축하며 성장을 거듭했다. 또한 2008년에는 에어앤스카이를 설립해 저비용 항공사 사업에도 진출했다.
1995년 예진프로덕션을 설립해 영화 제작 및 배급 사업과 음반 사업에 뛰어들었으며, 보도전문채널 채널24와 영화전문채널 예진시네마네트워크(現 JBS DRAMA)를 개국했다. 1996년에는 타임워너와 라이센스 계약을 맺고 예진매거진을 설립해 출판 사업에도 진출했다. 2006년에는 예진프로덕션과 예진매거진을 합병해 예진미디어스퀘어를 설립하고, 각 계열사들이 나눠갖고 있었던 한양일보, 채널24의 지분과 자사주를 인수해 미디어부문의 수직계열화를 이뤄냈다. 2011년 12월 1일에는 종합편성채널 JBS가 개국했다. 이렇듯 과감한 미디어 사업 확대는 이철호 회장의 강력한 의지에서 비롯됐다. 이 회장은 엄청난 영화광으로, 해외 출장 중에도 영화제 참석을 빼놓지 않았으며 평소 임원들에게 "기업이 문화의 힘을 갖지 못하면 살아남기 어렵다"고 강조했다. 또한 미디어 사업을 통해 그룹의 브랜드 가치를 끌어올릴 수 있다는 판단 아래, 미디어를 단순한 투자처가 아닌 그룹의 핵심 자산으로 여겼다.
2000년에는 프로야구에 참여해달라는 박지원 당시 문화관광부 장관의 제안을 받은 뒤 고심했고 2000년 2월 프로야구단 창단 의사를 밝혔다. 그해 3월 충청북도를 연고로 하는 신생팀 예진블리츠가 창단되었다.
잇따른 위기와 부활
2016년 최순실 게이트로 인해 이철호 회장과 최고 경영진들이 국회 청문회에 불려나가는 수모를 겪었고, 2019년 이후부터는 이철호 회장이 건강 문제를 사유로 대외 활동을 중단했다. 더군다나 조선업 불황과 탈원전 정책, 코로나19 등으로 인해 예진조선해양과 예진 건설부문, 예진엔지니어링, 예진항공 등 주요 계열사들이 잇따라 타격을 입으면서 위기설이 빠르게 번지기 시작했다. 더군다나 꾸준한 매출과 영업이익으로 캐시카우 역할을 하던 유통, 레저부문 계열사들 역시 쿠팡 등 이커머스 업체의 공세로 인한 시장점유율 하락과 코로나19 확산으로 인해 제대로 타격을 입었다. 그러나 2020년을 기점으로 조선업이 다시 되살아났고, 탈원전 정책 역시 폐기 수순을 밟으면서 점차 과거 실적을 회복하기 시작했다.[2] 또한 그룹 차원에서 원자력, 수소, 해상풍력 등 친환경 에너지와 항공우주, 연료전지를 새로운 핵심 성장축으로 삼고 신사업 확대에 나서며 사업 포트폴리오를 다각화하는 중이다. 예진항공 역시 코로나19로 인해 해외여행 수요가 급감하자, 여객기를 화물기로 전환하는 발빠른 대응으로 오히려 창사 이래 최대 영업이익을 달성하는 성과를 거뒀다. 현재는 해외여행 수요가 다시 증가하며 매출과 영업이익 증가세가 유지되고 있다.
이철호 회장의 대외 활동 중단 이후 그룹 경영은 이 회장의 장남인 이재환 부회장이 대행하다가 2023년 이재환 부회장이 회장으로 공식 취임하였다.[3] 이로써 예진그룹의 4세 경영 시대가 본격적으로 도래했다.
브랜드 아이덴티티
사명
예진은 송암 이용태 회장이 붙인 이름으로, 1946년 예진상회에 처음으로 사용되었다. 예(禮)는 고객과 사회에 대한 존중을 의미하며, 진(進)은 미래 지향적인 발전과 개척 정신의 의미를 지니고 있다. 예진그룹은 사명의 의미를 '기본과 원칙을 잃지 않는 품격 있는 태도로 끊임없이 혁신하며 미래를 향해 나아가는 초일류 기업'이라고 풀어서 설명한다.
CI
1978년 ~ 1995년
|
1996년 ~ 현재
|
사가
| 사가(社歌) - '예진찬가' (1975년 제정) | |
|---|---|
| 1절 | 겨레를 하나의 마음에 묶어 뜨겁게 타오르는 우리의 정성 인류의 고동 가슴에 품고 오대양 육대주를 가로지른다 |
| 2절 | 참되고 슬기롭게 오늘을 살며 미래꿈 펼처가는 우리의 기상 내일의 번영 다지고 다져 인류의 미래상을 창조해간다 |
| 후렴 | 아아 푸르깃발 우리의 예진 무궁한 내일의 보람을 안고 나가자 약진하자 우리는 예진가족 |
| 작사 박두진 / 작곡 정일남 | |
슬로건
- 전 세계에 펼치는 푸른 날개 (1988~1989)
- 세계속의 예진, 세계인의 예진 (1990~1994)
- 세계인의 꿈, 예진 (1995~1997)
- 정직한 친구, 예진 (1998~2003)
- 내일의 꿈을 응원합니다 (2004~2006, 2008~2015)
- 내일의 꿈을 창조하는 100년 기업 (2007)
- Dream Tomorrow, 내일의 꿈 (2016~2018)
- 내일을 바꾸는 힘 (2019~)
경영이념과 기업정신
오너일가
경영진
회장급
부회장급
- 박재원 ((주)예진 전략부문 대표이사)
- 이동욱 (예진조선해양 대표이사)
- 박승주 (예진항공 대표이사)
- 김현성 (예진생명 대표이사)
- 황민성 (예진리테일 대표이사)
- 이혜영 (예진미디어스퀘어 대표이사 겸 예진복지재단 이사장 겸 예진미술관 운영위원장)
사장급
- 양승모 ((주)예진 건설부문 대표이사)
- 박진우 ((주)예진 경영진단실장)
- 김우겸 ((주)예진 커뮤니케이션실장)
- 이한무 (예진엔지니어링 대표이사)
- 박우진 (예진엔진 대표이사)
- 김현일 (예진퓨얼셀 대표이사)
역대 임원
- 명예회장
- 이철호 (2023~)
-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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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석부회장
- 이재환 (2020~2023)
- 부회장
- 경영관리실장
- 종합기획실장
- 경영기획실장
- 비서실장
- 구조조정위원장
- 구조조정본부장
그룹사
예진그룹은 크게 에너지·중공업, 항공·우주, 금융, 유통·물류·서비스, 미디어 등 5개의 사업 영역으로 분류한다. 에너지·중공업의 주요 회사로는 예진조선해양과 예진엔지니어링, 예진엔진, 예진퓨얼셀을 꼽을 수 있고, 항공·우주는 예진항공과 예진에어로스페이스를 주축으로 한다. 금융 분야예는 예진생명과 예진손해보험, 예진카드, 예진자산운용, 예진투자증권, 예진저축은행 등 알짜 회사들을 거느리고 있다. 유통·물류·서비스에는 예진리테일(유통, 식음료)과 예진로지스틱스(물류), 르네상스호텔앤리조트(호텔) 등이 자회사를 종속회사로 두고 있다. 이외에도 예진P&D(부동산), 예진TNS(사무용 장비 제조), 예진ITX(IT서비스), 예진렌탈(임대업), 예진리서치(연구개발), 넥스티드(광고대행) 등 다양한 업종의 계열사를 거느리고 있다. 미디어에서는 신문과 방송, 출판, 공연, 음악 등 산업의 전 분야를 아우르는 사업 포트폴리오를 구축했다.
지주
- 예진: 사업 지주회사이자 그룹의 모태다.[4] 그룹의 지주회사 역할을 하는 동시에, 건설업과 해외 에너지 개발, 태양력/풍력/LNG 발전업, 국제 무역(철강/식량 등), 수입자동차 PDI 등 다양한 자체 사업을 영위하고 있다. 원래 예진건설과 예진상사, 예진정보통신[5], 예진산업개발, 한국종합에너지 등 5개로 나눠져 있던 회사를 1999년 구조조정 과정에서 하나로 통합해 창립한 회사이다. 최근에는 에너지 개발을 주력 사업으로 삼고 있고, 건설부문 역시 아파트 건설[6]보다 대형원전과 발전소 건설, SMR 등 EPC 사업 확대에 집중하고 있다.
에너지·중공업
예진그룹의 주력 사업군. 최중요 사업군 중 하나이지만, 다른 사업 영역보다도 업황의 영향을 많이 받는 업계 특성상 수주 Cycle에 따라 업앤다운이 심한 편이다. 2010년대~2020년대 초 예진조선해양과 예진엔지니어링이 연달아 심각한 위기를 겪기도 했으나, 수주 Cycle이 돌아오면서 점차 과거의 영광을 회복하는 중이다.
- 예진엔지니어링: 그룹 내 화공플랜트 사업을 영위하는 회사. 1970년 설립된 고려엔지니어링을 1978년 인수했다.
- 예진엔진: 2001년에 인수한 선박엔진 전문 제작업체로, 매년 안정적인 매출과 영업이익을 창출하는 알짜회사이다.
- 예진퓨얼셀: 2017년 설립된 발전용 연료전지 제작 회사로, 최근 그룹의 차세대 주력 사업군으로 키우고 있다. 2010년대에 들어서 조선 업계 불황으로 예진조선해양이 위기에 몰리고, 예진 건설부문이 탈원전 정책으로 타격을 입자 이에 대한 대책으로 발굴한 신사업 투자로 출범했다. 초창기에는 돈 잡아먹는 기계라는 날선 비판도 있었지만, 수소 경제 확산 흐름을 타고 가시적인 성과를 내고 있다.
- 예진에이치투솔루션: 예진그룹 수소사업 경쟁력 강화를 위해 설립한 수소 생산 및 활용 기술 개발 전문 R&D 법인이다.
- 예진모빌릭스: 드론에 부착하는 연료전지 파워팩을 제조하는 회사.
- 예진파워시스템: 에너지 장비를 생산하는 회사로, 2022년 예진퓨얼셀의 자회사로 편입됐다.
- 예진퓨얼셀모터스: 전기버스와 수소버스 등 친환경 상용차를 생산하는 회사로, 2020년 예진퓨얼셀의 자회사로 편입됐다.
항공·우주
그룹의 차세대 주력 사업군으로, 항공 부문의 꾸준한 수요를 바탕으로 캐시카우 역할을 하고 있다. 항공사 뿐만 아니라 항공기용 부품 생산과 방산, 우주개발 사업까지 아우르는, 국내는 물론 해외에서도 보기 힘든 사업 포트폴리오를 갖췄다.
- 예진항공: 1988년에 설립한 항공사로, 그룹의 주력 계열사이다.
- 예진에어포트: 항공사의 탑승 수속, 출입국, 수하물 처리 등을 담당하는 조업사. 항공사마다 조업사는 필수적으로 존재한다.
- 에어앤스카이: 2006년 설립한 저비용항공사(LCC)
- 예진스카이티켓: 1991년 예진항공의 자회사로 설립되었으며, 항공예약 및 발권시스템과 호텔, 렌터카 예약 등 여행사의 전자업무를 처리하는 프로그램 (CRS)을 운영하는 회사이다.
- 예진에어로스페이스: 우주발사체, 위성서비스 등 우주항공 사업과 항공기계 부품 생산, 무인기 개발 및 생산, 군용기 MRO, 항공기 구조물 개발 등 항공우주 및 방산 사업을 담당하는 회사. 1975년 설립되었다.
- 예진롤스로이스코리아: 영국 롤스로이스 plc와 합작으로 설립한 항공기 엔진 제조회사. 합작 지분비율은 6:4로 예진에어로스페이스쪽이 더 많다.
- 예진에어로시스템: 인공위성 탑재체, 위성영상 분석 소프트웨어 사업을 담당하는 회사.
금융
예진그룹의 숨겨진 대들보. 막강한 자금력으로 구원 투수 역할을 톡톡히 해내 예진그룹을 위기에서 구했다.[8] 대부분이 인수합병을 통해 계열사로 편입되었다. 예진금융네트워크라는 이름으로 생명, 손해보험, 카드, 증권, 자산운용, 저축은행을 하나로 묶은 통합 브랜드를 운영중이다.
- 예진생명: 옛 명칭은 서울생명. 1949년에 설립해 1963년 예진그룹 계열사로 편입됐다. 2016년 자산 100조원을 돌파했다. 2020년 매출 26조 2,200억원에 영업이익이 3,700억에 달하는 거대 보험사이자 예진그룹의 주력 계열사이다.
- 예진생명금융서비스: 2021년 제판분리를 통해 예진생명의 영업부문이 예진생명금융서비스로 재탄생하였다.
- 예진손해사정: 2005년 예진생명의 보험심사부문이 분사된 업체이다.
- 예진카드: 2001년 유로카드 코리아를 인수해 설립한 신용카드사.
- 예진저축은행: 2008년 인수한 저축은행
- 예진리츠: 법인 명칭은 예진위탁관리부동산투자회사로, 그룹의 부동산 자산을 소유한 리츠사이다.
- 예진손해보험: 옛 명칭은 한국손해보험. 1952년 설립된 손해보험사로 1963년 계열사로 편입됐다. 현재 원수보험료 4조 원, 총 자산 10조 원대 규모를 갖춘 중견 보험사로 성장했다.
- 예진자산운용: 1988년 설립된 자산운용사
- 예진투자증권: 2020년 매출 2조 7,000억을 기록하고 있는 증권사이다.
유통·물류·서비스
금융과 함께 예진그룹을 떠받치는 대들보 중 하나로, 유통과 물류, 레저, 부동산 개발, 사무용 장비 제조, IT서비스, 렌탈, 광고대행 등 다양한 업종의 알짜 계열사들을 보유하고 있다.
- 예진로지스틱스: 1951년 인수한 물류회사로, 적산기업인 경성운수를 불하받았다. 과거에는 그룹의 주력 계열사였으며, 현재까지도 안정적인 매출과 영업이익을 창출해내며 그룹의 캐시카우 역할을 하고 있다. 브랜드명으로는 예진택배를 사용중이다.
- 예진리테일: 유통, 식음료 부문의 중간 지주회사 역할을 하는 회사로, 1976년 슈퍼마켓 체인점 사업으로 시작해 다양한 분야로 사업을 확장했다. 현재 개별 사업부로 예진백화점과 플레이스와이, 푸디스트, 프레시와이, 라이브와이 등을 보유하고 있다.
- 마켓와이: 이커머스 사업을 담당하는 자회사
- 예진푸드: 식품관련 계열사. 주력 사업은 식자재 유통과 급식, 식품제조, 외식업이다. 예진그룹 계열사들의 구내 식당 운영을 담당하며 성장했다.
- 웬디스코리아: 미국 햄버거 체인 웬디스의 대한민국 매장을 운영하는 법인
- 필즈커피코리아: 미국 스페셜티 커피 브랜드 필즈커피의 대한민국 매장을 운영하는 법인
- 베리앤쿱스: 아이스크림 체인 베리앤쿱스 매장을 운영하는 법인
- 예진디에프: 예진리테일이 지분 100%를 보유한 면세점 운영업체. 예진면세점 강남점과 인천공항2터미널점을 운영하고 있다.
- 센트럴예진: 민자역사 운영업체. 천안아산역과 대전역 민자역사를 운영하고 있다.
- 비노하우스: 와인 및 수입 주류 유통을 주력으로 하는 회사로, 예진백화점 내 수입 주류 매장 운영을 담당한다.
- 르네상스호텔앤리조트: 르네상스호텔과 르네상스스테이, 르네상스빌리지를 운영하는 회사로, 1975년 설립된 르네상스관광개발이 전신이다.
- 아쿠아시티: 2021년 르네상스호텔앤리조트에서 물적 분할한 수족관 운영법인
- 파크아레나: 인천 파크아레나 공연장과 리조트의 운영을 담당하는 법인
- 서울리버사이드: 용인 서울리버사이드 골프장을 운영하는 법인. 54홀(회원제 18홀, 대중제 36홀) 규모로 2014년부터 르네상스호텔앤리조트가 100% 지분 인수하여 운영되고 있다.
- 예진P&D: 그룹 부동산 자산의 관리/운영을 담당하는 법인
- 예진TNS: 2002년 예진컴퓨터와 예진데이타시스템을 합병하여 설립한 회사로, ATM 기기와 디지털 데스크, 키오스크 등을 생산한다. 국산 ATM 양대 제조사로, 대표적인 캐시카우 중 하나이다.
- 예진ITX: 2011년 예진 정보통신부문을 분할하여 설립한 종합 IT서비스 기업
- 예진렌탈: 1989년 설립한 렌탈 전문기업. 렌터카 사업으로 시작해[9] 현재는 생활가전[10]과 사무기기 렌탈 사업으로 영역을 확장했다. 렌터카 브랜드로는 예진렌터카, 생활가전 브랜드로는 예진렌탈케어를 사용중이다.
- 예진리서치: 구 예진경영연구원. 경영컨설팅 사업 등의 영리 사업을 한다.
- 넥스티드: 1994년 프랑스 퍼블리시스와 합작으로 설립한 종합 광고대행사. 광고기획, 크리에이티브, 브랜드컨설팅, 미디어, 프로모션, 인터넷 마케팅 등의 사업을 영위한다.
미디어
다른 사업군에 비하면 그룹 내에서 차지하는 매출 비중은 낮지만, CJ ENM과 중앙그룹에 버금가는 규모의 미디어 계열사를 거느리고 있다. 이철호 명예회장[11]의 장녀인 이혜영 부회장 몫의 계열사들로, 향후 계열분리될 것으로 예측되고 있다.
- 예진미디어스퀘어: 2006년 예진매거진과 예진프로덕션을 합병해 설립한 회사로, 미디어부문 계열사들의 중간 지주회사 역할을 한다.
- 예진매거진: 원래는 별도의 법인이었으나, 2006년 합병 이후 예진미디어스퀘어 내 사업부로 운영 중이다. 레이디스코드와 맨투맨, 더 뮤즈, 인스타일 코리아, 피플 코리아 등의 잡지를 발행중이다.
- 한양일보: 1960년 태평양신문을 인수하여 창간한 일간신문
- JBS: 2011년 개국한 종합편성채널
- 스토리아: 1999년 설립된 인터넷 서점으로, 2014년 예진미디어스퀘어가 인수했다.
- 스튜디오플레이어: 2020년 JBS의 드라마부문과 예진미디어스퀘어의 유통사업부문을 분할 합병해 설립한 종합 콘텐츠 기업으로, 영상(드라마·영화·매니지먼트·OTT), 음악(음원 제작·유통, 공연), 스토리(웹툰·웹소설) 등 3개의 사업 부문으로 이뤄져 있다.
스포츠단
- 야구: 예진블리츠
- 골프: 예진항공골프단
- 승마: 예진퓨얼셀승마단
예진블리츠 야구단은 별도의 법인으로 운영하며 예진그룹의 계열사 형태다. 야구단은 별도의 대표이사가 있으며 사장급이 대표이사를 맡는다. e스포츠와 골프, 승마는 계열사 산하 부서 형태로 운영한다.
공익사업
- 예진복지재단: 1991년 설립되었으며, 그룹의 복지 사업을 담당한다.
- 예진장학재단: 장학 사업 및 교육자 시상 사업을 펼치는 장학 재단
- 송암재단: 1995년 설립되었다. 송암상 시상식을 개최하고 있으며, 학술연구 지원 사업 등을 맡는다.
- 학교법인 제일학원: 육영 사업을 담당하는 법인으로, 1968년 예진그룹이 인수해 재단 운영에 참여하고 있다.
특징
사옥
참모조직
그룹 참모조직의 뿌리는 셋으로 나뉜다. 1966년 비서실이 먼저 신설되어 1973년 경영관리실, 1974년 기획조사실이 차례로 생겼고, 1980넌에 기획조사실이 '종합기획실'로 변경되었다. 1990년 세 조직이 합쳐져 '경영기획실'이 됐다가 1994년에 '비서실'로 변경했으나, 1998년에 비서실을 폐지하고 '구조조정위원회'를 신설했다. 이후 2000년 '구조조정본부'를 거쳐 2006년 조직개편에 따라 '경영기획실'로 변경했다가 2017년 폐지됐다. 현재는 별도의 참모조직을 두지 않고, (주)예진 전략부문이 계열사 관리와 사업 전략 기획, 대외 홍보 업무 등을 총괄하고 있다.
- ↑ 그러나 국내외 경쟁 업체들의 물량공세를 이기지 못해 2002년을 끝으로 개인용 컴퓨터 사업을 접었고, 예진컴퓨터는 예진데이타시스템과 합병해 예진TNS가 되었다. 현재 예진TNS는 ATM 기기와 디지털 데스크, 키오스크 등을 생산하며 금융 IT기기 제조를 주력으로 삼고 있다.
- ↑ 최근에는 조선, 방산, 원전 테마주 열풍을 타고 주가 역시 고공행진을 이어가고 있다. 예진그룹은 조선(예진조선해양)은 물론 방산(예진에어로스페이스), 원전(예진 건설부문) 관련 기업을 모두 보유하고 있다. 2010년대 중후반의 위기를 생각하면 천지개벽 수준으로 이들 계열사들의 위상이 달라진 것이다.
- ↑ 이철호 회장은 명예회장으로 물러났다.
- ↑ 정확히는 예진그룹의 시초인 이승주상점과 대동무역이 예진상회와 예진상사, (주)예진 상사부문을 거쳐 (주)예진 글로벌부문이 되었다. 즉, (주)예진 글로벌부문은 이승주상점과 대동무역의 직접적인 후신인 것이다.
- ↑ 합병 이후 (주)예진 정보통신부문이 되었다가 2011년 예진ITX로 재분리했다.
- ↑ 아파트 브랜드로는 아레아(AREA)를 사용중이다.
- ↑ 과거 명칭은 예진중공업이었고, 조선업 뿐만 아니라 건설기계와 철도차량 사업까지 영위했었다. 그러나 1997년 IMF 외환위기 이후 빅딜을 통해 사업부문을 매각하면서 조선업만 남게되었고, 2000년에 예진조선해양으로 사명을 변경했다.
- ↑ 예진그룹이 1997년 IMF 외환위기를 자력으로 극복한 배경에도 금융 계열사들이 보유한 막대한 현금과 부동산 자산 덕분이었다는 분석이 있을 정도이다.
- ↑ 당시 미국 최대 렌터카 업체 엔터프라이즈와 합작으로 설립했다.
- ↑ 주요 렌탈 품목은 정수기, 공기청정기, 비데, 매트리스, 건조기, 세탁기, 커피머신, 의류청정기 등이다.
- ↑ 이철호 명예회장은 예진항공과 함께 미디어 사업에 가장 큰 애정을 보인 것으로 알려져있다.
- ↑ JBS DRAMA, JBS PLAY, JBS M, JBS STORY
- ↑ 2018년 창단. 젊은 층에 인지도 있는 롤을 노려 추후에 고객으로 삼을 수 있다는 생각으로 보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