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 편집 권한이 없습니다. 다음 이유를 확인해주세요: 요청한 명령은 다음 권한을 가진 사용자에게 제한됩니다: 사용자. 문서의 원본을 보거나 복사할 수 있습니다. {{삼우 회장}} {| class="wikitable" style="max-width: 420px; width: 100%; text-align: left; border: 2px solid #00357e; float: right;" ! colspan="2" style="height: 86px; line-height: 180%; background: #00357e; color: #FFF;" | [[삼우|{{글씨 색|#FFF|삼우그룹}}]] 창업주 <br>{{글씨 크기|16|신익상}}<br>申翼相 | Shin Iksang |- ! colspan="2" style="background: #00357e;" | <div style="border: none; margin: -5px -9px;">[[파일:신익상.jpg|420px]]</div> |- ! rowspan="2" style="width: 100px; background: #00357e; color: #FFF;" | 출생 | 1880년 7월 25일 |- | 경기도 개성유수부 <br>(現 개성시) |- ! rowspan="2" style="width: 100px; background: #00357e; color: #FFF;" | 사망 | 1958년 12월 11일 (향년 78세) |- | 서울특별시 종로구 인사동 |- ! style="background: #00357e; color: #FFF;" | 국적 | <html><a href="/index.php?title=파일:대한민국_국기.svg" class="image"><img alt="대한민국_국기.svg" src="/images/5/59/대한민국_국기.svg" style="width: 27px; border: 1px solid #D5D5D6;"></a></html> 대한민국 |- ! style="background: #00357e; color: #FFF;" | 본관 | 평산 신씨 (平州 申氏) |- ! style="background: #00357e; color: #FFF;" | 호 | 청연 (靑燕) |- ! style="background: #00357e; color: #FFF;" | 부모 | 아버지 신두익, 어머니 윤춘심 |- ! style="background: #00357e; color: #FFF;" | 형제자매 | 2남 2녀 중 차남 |- ! style="background: #00357e; color: #FFF;" | 배우자 | 임춘옥 |- ! style="background: #00357e; color: #FFF;" | 자녀 | 장남 신낙균<br>차남 [[신덕균]]<br>장녀 신영희<br>삼남 신종균 |- |} </div></div> {{목차}} == 개요 == 대한민국의 기업인. [[삼우그룹]]의 창업주이다. == 생애 == 1895년 경기도 개성에서 태어나 두 살 때 아버지를 여의고 홀어머니 슬하에서 자랐다. 가난에 지친 어머니는 그를 안고 친정인 서울 인사동으로 올라와서 함께 살았다. 친정 또한 살림이 넉넉지 못해 그의 어머니는 밤새워 남의 집 삯바느질을 해 주며 근근이 살아갔다. 친척들의 도움을 받아 보성중학교<ref>현 고려대학교</ref>까지 보내기는 했으나, 공부에만 전념케 할 수 있는 형편이 아니었다. 이후 그는 보성중학교를 그만두고 일본으로 건너가 광산학교에서 광산학을 제대로 배워 노다지 꿈을 이루고 그 자금으로 일대 사업을 펼쳐보리라 결심한다. 광산학교 초급과정을 마치고 귀국길에 오른 그는 평안도의 한 광산에서 근무하였으나 일이 맞지 않았던 그는 돈 40원을 모으고 퇴직한다. 20대 중반 한창 나이에 실업자가 된 그는 그저 막막하기만 했다. 일본 유학까지 다녀왔지만 모두 중퇴여서 변변한 졸업장 하나 없었고, 그렇다고 특별한 기술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그는 며칠 내내 집에서 이런저런 궁리를 하다가 서울 변두리에서 헌 구두와 양복을 사서 수선한 뒤 그것들을 갖고 시내를 돌았다. 헌 구두는 구두 수선공에게, 헌 내의는 시장 상인들에게 팔았더니 6개월 만에 200여원을 모으는 등 제법 이윤이 남았다. 이듬해 그는 외갓집 주선으로 상업은행 동대문지점에 은행원으로 취직을 한다. 낮에는 은행에서 일하고 밤에는 양복을 사다가 고쳐서 되파는 장사를 계속했는데, 오히려 은행원 일보다 밤마다 벌이는 옷 장사가 오히려 훨씬 수입이 좋았다. [[분류:삼우]] 이 문서에서 사용한 틀: 틀:글씨 색 (원본 보기) 틀:글씨 크기 (원본 보기) 틀:목차 (원본 보기) 틀:삼우 회장 (원본 보기) 틀:인용문 (원본 보기) 신익상 문서로 돌아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