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 편집 권한이 없습니다. 다음 이유를 확인해주세요: 요청한 명령은 다음 권한을 가진 사용자에게 제한됩니다: 사용자. 문서의 원본을 보거나 복사할 수 있습니다. {{삼우 회장}} {| class="wikitable" style="max-width: 420px; width: 100%; text-align: left; border: 2px solid #00357e; float: right;" ! colspan="2" style="height: 86px; line-height: 180%; background: #00357e; color: #FFF;" | [[삼우|{{글씨 색|#FFF|삼우그룹}}]] 창업주 <br>{{글씨 크기|16|신익상}}<br>申翼相 | Shin Iksang |- ! colspan="2" style="background: #00357e;" | <div style="border: none; margin: -5px -9px;">[[파일:신익상.jpg|420px]]</div> |- ! rowspan="2" style="width: 100px; background: #00357e; color: #FFF;" | 출생 | 1895년 7월 25일 |- | 경기도 개성유수부 <br>(現 개성시) |- ! rowspan="2" style="width: 100px; background: #00357e; color: #FFF;" | 사망 | 1958년 12월 11일 (향년 63세) |- | 서울특별시 종로구 인사동 |- ! style="background: #00357e; color: #FFF;" | 국적 | <html><a href="/index.php?title=파일:대한민국_국기.svg" class="image"><img alt="대한민국_국기.svg" src="/images/5/59/대한민국_국기.svg" style="width: 27px; border: 1px solid #D5D5D6;"></a></html> 대한민국 |- ! style="background: #00357e; color: #FFF;" | 본관 | 평산 신씨 (平州 申氏) |- ! style="background: #00357e; color: #FFF;" | 호 | 청연 (靑燕) |- ! style="background: #00357e; color: #FFF;" | 부모 | 아버지 신두익, 어머니 윤춘심 |- ! style="background: #00357e; color: #FFF;" | 형제자매 | 2남 2녀 중 차남 |- ! style="background: #00357e; color: #FFF;" | 배우자 | 임춘옥 |- ! style="background: #00357e; color: #FFF;" | 자녀 | 장남 신낙균<br>차남 [[신덕균]]<br>장녀 신영희<br>삼남 신종균 |- |} </div></div> {{목차}} == 개요 == 대한민국의 기업인. [[삼우그룹]]의 창업주이다. == 생애 == === 유년~청년기 === 1895년, 아버지 신두익과 개성상인이었던 어머니 윤춘심 사이에서 차남으로 태어난 그는 이른 나이부터 모친의 장사를 도우면서 사업에 관심을 가지게 된다. 우연한 기회에 일본으로 건너가 광산학교를 졸업하고, 귀국 후 서양인이 경영하는 광산의 직원으로 근무하였으나 퇴직하게 된다. 이후 운 좋게 조선상업은행 은행원으로 근무하게 된 그는 상업은행에 방문하는 상인들과 친교를 맺으면서 점차 상업에 관심을 가지게 된다. 1920년 인사동 입구에 [[삼우그룹]]의 시초가 되는 '청성잡화상'을 열고 낮에는 동생이, 밤에는 은행에서 퇴근한 그가 운영하는 투잡 생활을 시작했다. 이후 신익상은 남들이 선망하던 직장인 은행에 사표를 내고 상업에 전념한다. 당시 조선인이 운영하는 상점들은 상품을 일본의 제조공장에서 직접 수입하지 못하고 일본인 도매상에서 공급받아야 했다. 그가 운영하던 '청성잡화상'은 가뜩이나 서비스나 경영기법 면에서 밀리는 상황에서 가격 경쟁력도 부족하니 일본 상인의 상대가 될 수 없었다. 그러나 그는 일본인 상점에서 경험을 쌓은 조선인 점원을 스카웃하고, 세련된 진열로 소비자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그리고 오사카에 상주 직원을 보내 직수입 통로를 열었다. 덕분에 청성잡화상의 매출은 가파르게 상승하게 된다. 그는 여기서 만족하지 않고 또 하나의 승부수를 던졌는데, 조선 사람들에게는 매우 낯선 제도였던 정찰제를 시행한 것이다. 좋은 상품을 싼 가격에 팔고 있다는 이야기가 전해지면서 소비자의 신뢰를 얻게 된다. 1919년 종로 및 남대문의 상인들과 합자하여 삼우물산주식회사를 설립하고 사장에 취임하였는데, 이 회사는 자본금 200만 원, 1차 불입금 50만 원으로 창설된 비교적 큰 무역회사였으며, 내외산물의 수출입 및 판매를 목적으로 하였다. [[분류:삼우]] 이 문서에서 사용한 틀: 틀:글씨 색 (원본 보기) 틀:글씨 크기 (원본 보기) 틀:목차 (원본 보기) 틀:삼우 회장 (원본 보기) 틀:인용문 (원본 보기) 신익상 문서로 돌아갑니다.